Hector and the Search for Happiness, 2014  소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매일 같이 불행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런던의 정신과 의사 ‘헥터’,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뭘까 궁금해진 그는 모든 걸 제쳐두고 훌쩍 행복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상하이의 은행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아프리카의 마약 밀매상,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 말기암 환자,
그리고 가슴 속에 간직해둔 LA의 첫사랑까지
‘헥터’는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그는 리스트를 완성해 나간다.
 
설레고 흥겹고 즐거운 그리고 때로는 위험천만하기까지 한 여행의 순간들,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찾아 떠난 정신과 의사의 버라이어티한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그가 찾은 행복은?   "우린 다 행복할 의무가 있다"

[ SPECIAL MESSAGE ]
꾸뻬씨의 행복노트
- 행복해지는 열 여섯 가지 팁 -
01. 남과 비교하면 행복한 기분을 망친다
02. 많은 사람들은 돈이나 지위를 갖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03. 많은 사람은 행복이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04.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할 자유가 행복일지도 모른다
05. 때론 진실을 모르는 게 행복일 수도 있다
06. 불행을 피하는 게 행복의 길은 아니다
07. 행복은 일종의 부수적 효과다
08. 행복은 소명에 응답하는 것
09. 행복은 있는 그대로 사랑 받는 것
10. 고구마 스튜!
11. 두려움은 행복을 가로막는다
12. 행복이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13. 행복은 좋은 일을 기뻐할 줄 아는 것
14. 사랑은 귀 기울여주는 것
15. 향수에 젖는 건 촌스러운 짓이다
16. 우린 다 행복할 의무가 있다

오랫만에 마음에 와 닿는 영화를 보니 다시 책을 펼쳐보게 되더군요^^

물닭 [Fulica atra] 영명: Coot - 뜸부기과(―科 Rallidae)에 속하는 크고 퉁퉁한 대형 물새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새를 철새라고 하며, 일년 내내 이동하지 않고 머무르는 새를 텃새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관찰 기록된 새들은 현재까지 500여 종에 이르지만,

대부분은 철새로 겨울에 월동하거나 여름에 번식하는 새라 하네요~

매년 낙동강으로 찾아 오는 겨울 철새들을 올해도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겨울 철새들에게는 따뜻한 곳이라 이맘 때 찾아 오는 것이지만

개체수가 자꾸 줄어들어 안타까움이 앞서네요~

편히 쉬고 있다가도 작은 인기척에도 놀라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사진을 찍기에도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철새든 텃새든 그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은 우리의 숙제이자 양심이겠죠~

El Condor Pasa by Simon&Garfunkel (1970) 사이먼 앤 가펑클

보수초등학교와 보수동 주민센터 주변에 이렇게 벽화들이 생겨나 마을의 분위기를 밝게 해주고,
이곳을 오가는 어린이들에게 동화같은 즐거움을 심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서점 하교길"

보수동하면 책방 골목이 연상되니 벽화도 책이 많이 그려져 있네요~

아이들의 꿈을 벽화로 표현 한 것 같은 데 벽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 해 줍니다. ^---^

"달빛나무 세상"     동화책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벽화가 재미있죠.

마법의 성 이야기라는 작품입니다~

어린왕자와 관련이 있는 벽화인데 장미 조형물로 억수로 인상적이죠~ ㅋㅋ


어데고~  뭐꼬~    "달팽이" 




작가는 "형상화된 섬유소재의 구김과 중첩 속에서 지나온 열정의 인생과 어디든 넘나드는

자신의 자유로운 시선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실크직물을 염료로 물들이고 두 겹의 직물을 포갠 다음 홈질과 박음질을 통해
형태를 드러내는 제작기법을 바탕으로 구김과 겹침의 미학을 찾아 소재들간의
중첩과 변형을 시도한 다양한 섬유입체작업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우양자  WooYangJa

작가는 "실크 직물들을 염료로 물들인다. 색을 담은 직물들을 두 겹으로 포개어 형태를
바느질로 드로잉한 후 컬러링으로 느낌을 입히고 터치로 생명을 준다.
이렇게 적막하고도 부산한 시간 끝에 한 겹은 조용한 배경이 되고 또 한겹은 그 위에 조각이
되어 살아 숨쉰다. 이것이 내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이다"라고 말합니다.

천에 이렇게 화려함을 표현한 작품을 보니 다양한 표현의 세계를 보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각각 재질이 다른 섬유끼리의 교합과 구김, 겹침으로 중첩되는 효과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두 겹의 실크를 놓고 바느질하고 드로잉했다 합니다.

작가는 지난해 프랑스 여행을 통해 경험한 자연과 세상, 모든 열정이 녹아내려 담긴 듯한
양귀비를 보고 강렬한 느낌을 빨강으로 표현했다고 하니 그 느낌이 확실하게 들더군요^^


12월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부산에서만 ㅎㅎ)  눈이 내렸습니다~

기온이 높아 눈이 안 쌓일 것 같았는 데 운동장에 소복합니다^^

저보다 일찍 오신 선생님들도 계시네요~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네요? ㅎㅎㅎ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며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눈꽃도 찍어 보고~

사진도 찍어 주고~  즐거운 아침이 되었습니다^---^

하카타 고마 팽이 - 심봉에 철을 사용한 일본 최초의 팽이입니다.

1300년 전, 중국에서 아이들의 놀이로서 대나무제 당(唐) 팽이가 일본에 전해져, 17세기 후반,
나무대에 철심을 심봉으로 넣은 하카타 팽이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카타 고마 팽이는 팽이를 만드는 재료와
돌리는 기술, 무대에서의 곡예 삼위일체를 이루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습니다.

하카타 마게모노
다도 도구, 나무밥통, 도시락통 등 나무 고유의 멋을 살린 생활용품으로서 애용되고 있습니다.
하카타 마게모노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에도시대부터 활발히 만들어지기 시작해
후쿠오카시에 있는 하코자키구 신사의 신구로서 오래전부터 봉납 되어 온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멀티 글래스
성질이 다른 색 유리가 여러 층으로 겹쳐져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일본의 유리공예로서는 처음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하카타 하리코 인형
T단오의 절구와 하카타 돈타쿠 (니와카 가면)와 도카에비스(장식용 물고기) 등 서민 생활 속에서

빠뜨릴 수 없습니다. 에도시대 중기, 하카타 상인이 오사카에 하리코를 배우러 갔다고 전해지며,

오뚝이가 서민의 생활 속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카타 오리 작물
지금부터 약 770년 전, 스님(훗날의 쇼이치 국사) 한 분과 함께 젊은 하카타 상인 미쓰다야소에몬

(満田弥三右門)이 송나라로 여행을 떠나 직물의 기술법을 습득한 뒤 귀국했습니다.
그 후, 대대로 내려오면서 계승된 것이 하카타 오리 직물의 시작입니다.  시대에 맞춰 새롭게 개량한 직물을 구로다 나가마사가 막부에게 헌상한 것에서 [겐죠(헌상) 하카타 오리]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허리띠뿐만 아니라 드레스나 가방 등 다채로운 상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카타 가위
당(唐) 가위를 개량해 만든 섬세한 날이 자랑인 일본식 가위입니다.
지금부터 약 700년 전, 남송에서 귀화한 샤코쿠메이가 하카타에 가위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 당 가위라는
이름의 일본 최초의 가위입니다. 막부 말경 하카타 하쿠야초에 사는 칼 대장장이인 야스카와치 우스케가
당 가위 제작에 힘써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지쿠젠 하카타 화살
화살 앞 끝의 장식으로는 주로 가부라야(鏑矢)와 히키메(蟇目) 두 가지가 있으며,
활을 쏠 때 나는 둔탁한 소리는 중후한 멋이 있어 일본 활 중에서도 인기가 있는 대나무 활입니다.
활과 화살은 예로부터 싸움의 신으로 받들어졌으며,
또한 가족의 안전, 무병 무사함을 기도하는 액막이, 악마불제를 위해 이용됐습니다.

[사진 - 하카타 전통공예관 참조]

설명은 하카타 전통공예관 홈페이지를 참조했습니다.

이번 관람을 통해 수백년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과 그들의 작품들을 보며 우리도 꾸준한 노력과 관심을

가져 우리의 멋드러진 전통을 꾸준히 이어나가길 염원해 보았습니다.

하카타 전통공예관 교류전 - はかた伝統工芸館
후쿠오카 전통공예품의 대표격으로 예전부터 장인들의 손에 의해 계승되어 온 [하카타 오리 직물],

[하카타 인형], [하카타 전통공예관]에서는 후쿠오카‧하카타와 관련 있는 전통공예품 중 우수한 작품을

전시, 소개함으로써 장인 기술의 훌륭함을 모두가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관람하게 되었는 데  하카타 인형 장인이 직접 시연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좋았습니다.

직접 체험할 수도 있더군요^^ 탈에 색칠하는 거라 구경만 했습니다. 

정교함과 우아함을 엿볼 수 있는 하카타 인형

가격이 좀 그렇죠?  그래도 멋지게 만들었으니...

일본문화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라 이국적으로 보이기는 하더군요^^

1666년 구로다 나가마사의 지쿠젠 입국에 따라 많은 기술자가 모여 그 중 누군가가 구워낸
소박한 도기인형이 현재의 하카타 인형이 탄생하게 된 계기라고 합니다.

메이지시대에 들어선 후, 파리 등 국제적인 박람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일본을 대표하는 인형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네요~ [참조 : 하카타 전통공예관 홈피]

장식으로 적합하게 만들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음~  역시 가격이...

현대적인 작품인데 연아는 아니고 아사다 마오겠죠  ㅎㅎㅎ

[ 달항아리 이야기 ]

달항아리는 17,18세기 경기도 광주 금사리가마와 분원가마에서 만들어진 백자를 말한다.
대부분 높이가 40㎝ 이상이어서 백자대호라고도 한다. 원에 가까운 형태가 둥근 달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닥에 닿는 굽이 입보다 작아 달이 둥실 떠 있는 것 같아서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몸체가 크기 때문에 물레질로 점토를 끌어 올려 한 번에 형태를 빚을 수 없고 상층과 하층을 따로 만든 뒤

두 부분을 접합시켜 완성한다. 따라서 달항아리는 대부분 이음새가 나타나는데 정교하게 다듬지는 않는다. 심하게 이지러진 것도 있는데 기교에 집착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깊은 맛을 낸다. 
- 오마이뉴스 고진숙기자 / 우리 도자기 역사

지극히 평범하고 꾸밈이 없어 더 아름다운 조선의 백자, 더 나아가 한국미의 극치로 손꼽히는
백자 달항아리의 미학은 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통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17세기 조선 왕조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중화 中華에 대한 회의와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기 시작한다. 조선 사대부들의 정신적 지향점이었던 명나라가
멸망하고 지금껏 오랑캐로 천시하던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중국의 주인이 되어버리자
가치관과 세계관의 혼란을 겪게 된다.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이들이 찾아낸 답은 ‘중국은 우리다, 조선이 중국이다’였다.
중국이 우리라는 것은 곧 우리 안에 진리가 있다는 것.

18세기 영·정조가 재위하며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에 백자 달항아리가 등장한다.

당시 중국은 청화 백자 위에 삼채, 오채, 칠채로 화려한 채색 자기를 만들고 일본은 이를 따라 채색 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모두 오랑캐 짓이라 여긴 조선은 그 반대급부로

날렵한 성형이나 요란한 기교 없이 자연미로 가득 찬 순백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를 두고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과 그 예술>에서 “동서를 막론하고 시대가 내려오면 기교가 복잡을

더하는데 그 예외를 찾을 수 있으니 바로 조선의 도자기 공예다.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단순으로의 복귀”

라고 표현했다. 18세기 백자 달항아리는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과 예술성을 바탕으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탄생한 조선 문화의 백미인 것이다.  - 인터넷 참조

조선 백자의 백미, 백자대호 白磁大壺
朝鮮白瓷의 美는
이론을 초월한 白衣의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놓으면
넘어지지야 않을 게 아니오.

조선 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山水와 같은 自然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白衣의 民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古今未有의 한국의 미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을 캐고 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 삼불 김원용 선생 작 ‘백자대호’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1935년 달항아리를 구입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고 했다지요. 여러분도 보름달처럼 휘영청 밝은 달항아리가

전하는 행복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달항아리에 대한 수 많은 예찬은 많이 들었지만 아직 저에게는 그리 다가 오지 않더군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 늘 채우고자 하는 욕심이 많아 그렇겠죠~

도자기란 흙과 불의 합작품이라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 여겨집니다.

밝달 여상영의 달항아리전을 통해 다시 조금씩 다가 가 보았습니다.

'밝다'라는 의미의 '밝달'은 높은 산자락에서 혼자 밝은 달과 함께 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선조들의 숨결이 물씬 풍기는 항아리를 만들기 위한 정신과 때 묻지 않은 그릇을 굽기 위한 고집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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