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성당(殿洞聖堂)은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이다.
1981년 9월 25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통감부는 전주에 새 길을 내기 위해 풍남문 성벽을 헐었는데 보두네 신부가 그 성벽의

돌들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당 지하에는 당시 썼던 주춧돌이 성당을 탄탄히 떠받치고 있다.

공사는 중국인 벽돌공 백여명이 동원돼 전주성을 헐은 흙으로 벽돌을 구웠고, 석재는 전북 익산의 황등산의

화강석을 마차로 운반해 왔다. 목재는 치명자산에서 벌목해 사용했다고 한다.

전동성당은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동서양이 융합된 모습이어서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화강석을 기단으로 사용한 붉은 벽돌 건물로서,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있고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과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준다. 비잔틴 풍의 종머리는 건물 본체와 잘 어우러져 사진촬영 명소로 도 각광받고 있다.

성당 앞에 세워진 하얀 그리스도 상은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한국 최초 순교터' 라고 새긴 기념비는 이 곳 전주의 아픈 천주교의 역사를 품은 전동성당의 존재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전주 풍남문은 조선 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으로 성벽이 헐린 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관찰사의 소재지였던 전주에는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이 초기부터 있었으며, 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는데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에 모두 파괴되었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에는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주성의 남문이 바로 풍남문이다. 후백제의 왕도였으며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은 유서 깊은 성문으로 근래에 복원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주의 명물이다.

풍남문 종각에서 파루를 쳐서 부성 안에 조석을 알렸던 종소리는 이제는 서울 보신각 종처럼 제야(1월1일 0시)에 종소리를 울려 이 고장의 새해 새 희망을 안겨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게 한다.



경기전 서편에 있는 부속 건물들인데 다양한 용도로 지어져 있어 둘러 볼만 했습니다.

경기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사용한 거처라 더욱 정감이 가는 한옥입니다^^

경기전 내 많은 건물들이 왜란 이후 재건축한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옛모습이 좋습니다.

왕의 어진을 모신 사당보다는 실제 사람들이 살고 사용했던 공간이라 더 그런 마음이 든 건 아닐까요?





전주 경기전 정전(全州 慶基殿 正殿)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 있는 조선 시대의

묘사(廟祠)이다. 조선 왕조의 개창자인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어진을 모신 건물이다. 1991년 1월 9일 대한민국 사적 339호로 승격되었고, 2008년 12월 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578호로 지정되었다.

전주는 전주 이씨인 조선 왕실의 본관지로써 조선이 세워진 뒤에는 조정으로부터 우대받았다. 태종(太宗) 10년

(1410년)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경기전이 세워졌으며, 조선태조의 어진을 이곳에 봉안하게 되었다.

예전에 대충 둘러 보는 것보다 다시 찾아 여유롭게 보니 한결 더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아 집니다^^

한옥마을에서 느끼지 못한 선조들의 시간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기전의 남동쪽 담장 부근에 이르면 예종의 태실 및 태실비가 자리하고 있다. 고승들의 부도와 흡사한 태실 및 태실비는 원래 완주 태봉산에 있던 것을 197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한옥보다는 사람 구경만 실컷하고 온 전주나들이^^

조금 이른 시간이라 한산하더군요~

이번이 4번째 방문인데 아마 다음엔 찾지 않을 것 같은 풍경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점차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상업화된 전통거리로 변질되어 버린 것에

단순 방문은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집니다?


운주사 서쪽 산등성이에 누워있는 와불은 누워있는 부처를 말하지만 운주사 와불은 누워있는 게 아니라 일어나지 못한 불이다. 와불은 세분이었다. 한 와불은 홀연히 일어나 와불 절벽 밑에서 머슴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기존의 불상과 탑의 양식을 따를 필요도 없다. 토속적이기도 하고 이국적이며 이색적일 수 있다.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이기도 하다. 탑에 새긴 무늬나 불상의 옷 무늬, 얼굴모양 모두 파격적으로 만들어도 상관없다.

그 모든 양식이나 격식이 없는 운주사의 석탑과 불상들이 보는이로 하여금 더욱 마음에 평온을 얻게되는 건

우리 모두의 생각이 아닐까?




와불 한구석에서 머슴부처를 떼 낸 흔적이 남아 있어 이 지역의 바위가 잘 떼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현명한 석공은 이 두 와불도 떼어 내어 일으켜 세우려고 했을 게다. 그러나 이 와불은 세우지 못했다.

아직도 와불이 일어나는 날 세상이 바뀌어 천한 백성이 주인 된다는 설화만을 남긴 채 누워있다

운주사의 유물로 가장 과학적이고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칠성바위와 관련한 것이다. 일곱 개의 원반바위는

한여름 초저녁 북두칠성자리를, 위에 있는 와불은 북극성을 나타낸 것이며 바위크기는 북두칠성의 밝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운주사 뒷산 공사바위에 올라가 보니 운주사 전경이 전체적인 모양이 배와 같기도 하다. 계곡이 갑판이고 운주사 맨 앞의 구층석탑이 돛대고 운주사 중심부에 자리한 석조불감이 선실 같기도 하다. 운주사에 흩어져 있는 불상은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것 같다. 배는 누가 부릴까운주사 후미 높은 곳에 있는 마애불이 아닐까?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 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 볼 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하 하니 그 석질로 빚어 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운주사 석탑들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석탑들이 아니다. 우선 모양에서 호리호리한 것에서 둥글고 동그란 것까지 다양하다. 거기에 새긴 무늬도 마름모 모양(), 교차문(), 쌍교차문(XX), 수직문(),브이()모양까지 여러

가지다. 모두 정형적인 모양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것들이다.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원형석탑이 발길을 붙잡는다. 호떡 같이 보인다하여 '호떡탑'이라 불린다. 지붕돌과 몸돌 모두 원형으로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는 듯하다. 석조불감과 함께 운주사 중심부를 형성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석탑과 불상들이 운주사를 더욱 찾고 싶은 곳으로 알려진 것은 아닐까?

그 오랜 세월의 풍파속에서도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들에게 그 무엇을 전하려는 건 아닌지...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무척이나 가보고 싶은 천불천탑의 신비가 가득한 운주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산이라 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 기종 사찰과 다르다는 생각을 입구부터 하게 되더군요^^

입구부터 웅장한 탑(9층석탑 보물 796호)이 반겨주네요^^

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볼만은 합니다? ㅎㅎㅎ

대부분의 불상들이 그냥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아 보기는 조금 그렇지만 그 또한 세월의 흔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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