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국

       -  송 다 인

1                                                 

누가 심어 놓은 정원의 바다인가

눈부신 희열이 출렁출렁거리더니

모란 송이처럼 함지박 눈웃음으로

오는 발길 내내 묶어 두더니

수평선 쪽빛 이야기 속살거리며

가는 발길 희망차게 굴리게 하더니

제발 날 잊지 말아달라며

자꾸만 손사래치고 있었다

어디 하루 이틀이야 말이지


 

2

짙푸름이 포르스럼 붉으스럼되더니

서서이 곰삭은 진달래의 속삭임으로

비바람이 누차 지나가더니

넘실대던 청춘은 간 곳이 없고

고요히 꼼짝 달싹 쥐 죽은 듯이

온 육신 움켜잡고 있으니

쉬이 쉬

떠들지 말거래이

꽃잎 하나라도 떨어질세랴

오늘도 예사롭게 지나치지 못하는

눈에 밟히는 내 이명의

황야에서 너는


 

3

늦가을 저녁 어스름 길목에서도

초겨울 설렁한 귀가 길에서도

그 꽃잎 그대로 단풍이 물드는 구나

꽃이 시들면 다 지는 게 아닌가

붉은 청춘 황홀하던 오동도의 동백꽃도

붉은 영혼 가지런히 포개면서

살며시 떨어져 귀향하고 있는데

너는 왜 어이하여

세상의 미련 떨치지 못하고

아직도

낙화하는 황혼 걸치지 못하는 구나

봄이 오면 아해야

한 떨기 수국들의 향연을 위해

뜰 안채에 심어 두지 않으련


수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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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너는 뭐니?
나는 너.
너는 뭐하니?
널 보고 있지.
왜 날 보고 있지?
난 널 보고 있어야만 해.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진정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내 시야에서 너를 놓칠 수 없어.
때로는 너를 버리고 싶어
너를 지워 버리고 싶어
너를 묻어 버리고 싶어.
하지만
하지만
나의 존재가 진정한 너의 모습을 보고 싶어해.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오늘도 거울 앞에 섰어.
한 생을 다한다 할지라도
다음 생을 기약한다 할지라도
너를 바라보는 마음은 내 삶의 의미일 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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