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저 가는 교육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소수서원 紹修書院

서원의 입구는 울창한 솔숲으로, 

오른쪽으로는 죽계수(竹溪水)가 내려다보이도록 지은 경렴정(景濂亭)이 있습니다.

성생단은 향사에 쓸 희생(犧牲)을 검사하는 단(壇)으로 생단(牲壇)이라고도 한다.

서원의 생단은 사당 근처에 있는 것이 관례인데, 소수서원의 생단은 서원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경자바위 - 경렴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죽계수 건너편 바위에는 주세붕이 쓴 '경(敬)',

이황이 쓴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원 입구의 오른편에 있는 경렴정은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이다. 

'景濂亭'은 1543년 신재 주세붕 선생이 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정자 중에 하나입니다.

소수서원 문성공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서 있는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강당이다.

직방재(直方齋) - 전사청(典祀廳) - 학구재(學求齋) - 지락재(至樂齋)

영정각(影幀閣)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과 안향(安珦)을 비롯해 남송시대 주자학자인 중국 유학자 주희, 선조 때의 명재상인 한음 이덕형(李德馨), 허목(許穆), 이원익(李元翼) 등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서원의 건물 곳곳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영정각 내부에서 본 서원 풍경

서원 건물 벽면에서도 나무의 자연적인 형과 문양을 살린 것이 더욱 멋지네요^^

미니어처로 보여주는 서원 생활의 일부

1542년(중종 37) 8월에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配享)하는 사당

'소수(紹修)'라 함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음'이란 뜻으로 학문 부흥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명종임금은 손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영주 부석사[浮石寺]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겨울 운치가 가득한 부석사 풍경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두개의 누각중 하나인 범종각. 배치와 지붕구조가 특징인 건축물입니다.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안양루(安養樓)

 부석사 전경

 

 무량수전에서 본 석등과 풍경

 부석 "뜬돌" 곧 부석이다.
 사찰의 이름이 유래된 뜬돌. 지금도 불전뒤 바위와 그것을 덮고 있는 큰 바위 사이에 끈을 넣어 보면 넘나드는 것으로 돌이 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애잔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온다.  의상대사는 중국에서 불법을 공부할 때 잠시 머물렀던 신도의 집에서 선묘낭자와 만난다. 그후 선묘낭자는 의상대사에게만 온 마음을 바치지만, 출가한 승려를 향한 사랑은 애초부터 속세의 관념대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묘낭자는 귀국길에 오른 의상과 이별하지 않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을 따라 신라로 온다. 그후에도 용이 된 선묘낭자는 그를 보호하고 도와 준다. 부석사를 창건할 때도

절터에 이미 자리를 잡은 도적떼를 물리치기 위해 큰 바위를 세차례나 하늘에 띄우는 이적을 행한다.

바로 이 전설을 간직한 뜬돌을'부석'이라고 부른다.

 석등과 무량수전

 국보 제17호인 부석사 무량수전앞석등(통일신라)과  보물 제249호인 부석사삼층석탑(통일신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제18호  고려시대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18호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이고 팔작지붕 건축물입니다
그리고 기둥을 배흘림기둥을 사용하였는데. [ () <-이런 형태 ] 착시현상을 통해서 건물의 안정감을 꾀하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내부의 불상이 정면에 있는 것이 아닌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으로 다른 사찰의 형식들과는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20여년만에 찾은 부석사 감회가 남다르네요^^

무섬마을의 외나무 다리!  콘크리트 다리가 세워지기 전 세상과소통할수 있는 길은 오직 이 다리뿐

이 세상 떠나는 상여도 새색시 태운 가마도 모두 이 다리로 ...

무섬마을을 감싸 안은 물줄기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다.

무섬마을 홈페이지   이미지 참조

삼면은 내성천 줄기에 안겨있고 뒤로는 태백산 끝자락과 이어진다.

무섬 마을의 초가집에서

고택 입구의 대문칸의 초가가 더욱 정겹더군요^^


기와지붕이 독특하죠~

초가 지붕에는 까치구멍이라 불리는 형식입니다^^

   아궁이와 외양간이 실내에 들어와 있는 까치구멍집은 연기와 냄새의 배출을 위한 환기구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지붕 용마루 양 끝단 아래 합각부분을 막지 않고 틔워 놓았다. 이곳으로 간혹 까치가 드나든다고 해서 까치구멍집이다.

   까치구멍집은 밖에서 보면 모두 벽으로 막혀있어 난방과 방어에 유리하다. 정면 가운데 있는 판문을 들어서면 봉당이고 좌우로 부엌과 외양간이 함께 있는 게 보통이다. 농경이 중심이던 시기에 소는 가족구성원으로 집안에 들어왔다. 바닥이 낮은 부엌과 외양간은 상부공간에 여유가 있어 고미다락을 만들어 추수한 곡식이나 생활용품의 보관소로 활용했다. 봉당 뒤로는 마루가 있고 좌우로 방이 있다. (인터넷 참조)

영주 무섬마을은 2013년 8월 23일에 국가지정문화재 주요민속문화재 27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흙벽의 환기구멍도 나무벽도 모두 정겹네요^^


육지속 섬마을!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41 (수도리 209) 

무섬마을 홈페이지 이미지 참조

다리하나를 건너니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해우당, 만죽재 등의

고택들과 초가들이 오랜 세월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육지속 섬마을! 무섬마을
'물위에 떠 있는 섬'이란 의미이기도 하지만
무섬의 다른 의미로는 3무(三無)이다. 마을안에 우물이 없고, 대문이 없고, 농토가 없다는 뜻기도 하다네요^^

시인 조지훈은 시 `별리(別離)’에서 자신의 처가 동네인 무섬을 가리켜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라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무섬마을은 340여 년이라는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반남 박 씨와 선성 김 씨 두집안의 집성촌으로

수백년 동안 화목하게 지낸 우리 전통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였습니다.

[ 마을의 유래와 전설 ]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입니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뒤편에서 만나 350도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또한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선성김씨 해우당고택 (宣城金氏 海愚堂古宅)

경북지역 양반집 대저택 한국의 한옥으로 고택 영주 선비촌에서 가장 큰 저택 중의 하나인 "해우당"

경북 안동지역 저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ㅁ'자형 저택이다.

고종(高宗) 때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김낙풍(金樂豊, 1825~1900) ,     건축시기 : 1879년경

높은 천장

넓은 대청 마루가 인상적입니다^^   6칸의 대청 본체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의 평면구성은 전면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두었다.

이런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정말 훌륭한 분들의 고향 같았습니다^^

'만죽재(晩竹齋)' 고택은 무섬마을의 입향시조인 박수(朴隨)가 1666년도에 최초로 건립한 가옥으로

북부지역의 口자형 평면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굳이 글과 말이 필요가 없는 보문정의 가을입니다 ^^

기냥 단풍에 취해 바람에 실려 가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너무나도 유명해 설명이 필요없는 역사 유적지 경주 계림

사적 제19호인 계림(鷄林)은 신라 초부터 있던 숲으로 정식 명칭은 경주 계림입니다

가을의 계림은 세상의 모든 색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적(史蹟) 제161호   경주 동부 사적지대   慶州 東部 史蹟地帶

사적지를 가장 편하게 둘러 볼 수 있는 비단벌레 전기자동차^^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첨성대

조금 흐린 날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 나온 것 같더군요~

동서는 안압지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월성남의 남천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가 있는 곳까지가

동부사적지대에 해당됩니다.

월성, 안압지, 첨성대, 계림 등이 각각 하나의 사적으로 지정 되어있으나,
이들 유적 사이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지하유적과 유물이 계속 출토되고 있다네요~



신라 도성의 중심지역을 보존하기 위해서 사적지를 연결하여 확대 지정한 것으로 안압지, 경주월성,

첨성대, 계림, 내물왕릉 등 외에도 수십기에 달하는 신라 무덤이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신라시대 최초로 왕의 칭호를 사용한 내물 왕릉 奈勿王陵  사적 188호



우리나라 최초의 동·식물원이었던 동궁과 월지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경주동궁원은 접근성이 용이한

보문단지내에 금강산과 명활산성을 사이에 두고 총면적 64,830㎡로 사계절 관광체험시설인 동궁식물원,

농업연구체험시설, 민간사업인 버드파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의 찬미, 일만송이 토마토 정원 - 농업체험공간

동궁식물원과 버드 파크 사이에는 경주시 농업기술센터가 관리하는 농업연구 체험시설이 있습니다.

<일만송이 토마토정원>에 들어서니 정원 안 한 가득 탐스러운 토마토들 달려 있네요.

경주 동궁식물원은 야자원, 관엽원, 수생원, 화목원, 열대과원의 테마로 구성된 아열대 테마식물원입니다.

400여 종 5,500여 본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는 유리 온실 내부는 들어서자 마자

열대 숲의 기운이 가득하더군요^^

외형도 멋지지만 내부 공간 활용도는 좋았습니다~

9월에 개관을 해서 그런지 식물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더군요~

다양한 아열대 식물들이 가득했지만 다양한 꽃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특이하고 인상적입니다^^

위층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 마치 밀림을 공중에서 본는 느낌이라할까? ㅎㅎㅎ


동궁원 입장료는 성인 4천원, 경주시민 1천원

버드파크는 성인 1인당 1만7천원, 경주시민은 9천원의 입장료를 별도로 내야 관람할수 있습니다.

동궁원과 버드파크 입장료를 한데 묶는 통합요금(개인 1만8천원, 시민 9천원)

경주시가 최초로 민자유치 방식으로 건립한 버드파크는 경북도 1호 전문동물원 박물관으로 250종,

900수의 조류와 어류, 파충류 등을 전시하는 생태체험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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