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 손석철

세월이란 그림 그리시려고

파란색 탄 물감솥 펄펄 끓이다

산과 들에 몽땅 엎으셨나봐

어느 여름

                          - 신현정

애벌레들이 녹음을 와삭와삭 베어먹는

나무 밑에 비 맞듯 서다.

옷 젖도록 서다.

이대로 서서 뼈가 보이도록 투명해지고 싶다.

언제나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이기대공원 산책로

여름 일기·1 

            - 이해인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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