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 형태의 겹지붕을 가진 존덕정인데, 1644년 인조 때 만들어져 이 일대에서는 가장 오래된 정자입니다
처음에는 육면정이라고 불리다가 존덕정으로 바뀌었으며, 본 건물을 먼저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만들었다. 바깥지붕을 가는 기둥 3개가 쌍이 되어 바치고 있습니다.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네모난 연못과 둥근 연못이 3개가 연이어 있었지만 관람지는 조선 말 하나의 곡선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언덕 위쪽에 있는 정자는 사모지붕을 한 승재정인데, 관람정 맞은편 있습니다.^^


존덕정[尊德亭]은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부이 두 개입니다.
바깥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 더욱 이채롭네요~

특이하게도 지붕이 겹으로 되어 있네요~ 항상 아쉬운 점은 시간에 쫓겨 여유를 가지고 유물을 바라보지

못하고 서둘러 구조만 보고 사진을 찍고 발길을 돌리던 것을 이번에도 또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존덕정을 보다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정조가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호를 삼으며 이 정자에 '만천명월 주인옹 자서'라는 글귀를 게판으로 건 것이었다. <홍재전서>에 기록된 자서에 의하면,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나의 연거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써서 자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정조22) 12월 3일이다."라고 하여, 만 개의 개울에 만 개의 달이 비치지만 달은 오직 하늘에 떠 있는 달, 바로 정조 자신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후원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천장에는 청룡과 황룡의 쌍룡이 그려져 있습니다.

[재대로 담지 못한 사진 2장은 인터넷 이미지로 대처 했습니다.]

단순하게 멋진 정자라 생각하고 마냥 보았지만 해설사가 구조 하나하나에 그 의미가

그렇게 많은 걸 설명듣고 보니 더욱 색다르게 느껴지더군요.

관람전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

관람정은 평면이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정자로 ‘관람(觀纜)’은 ‘닻줄’,

즉 ‘배 띄움을 구경한다’는 뜻이며  나뭇잎 모양의 녹색 현판에 정자 이름이 적혀 일반 궁궐 건물의 현판과는 그 형태가 다른 재미 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 건축적이기보다 공예적인 수법을 많이 구사한 정자로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하나로 손꼽힙니다.

창덕궁 취규정[聚奎亭]은 후원의 산 등성이에 있습니다. 존덕정 앞 길을 따라 100m 정도 오르면

양갈래 길이 나옵니다. 왼쪽으로 가면 옥류천으로 가는 길이라 하네요~

취한정[翠寒亭] 소요정의 동쪽에 있으며, ‘蒼翠凌寒’(푸른 나무들이 추위를 업신여기다)의 뜻에서 취했다.

옥류천(玉流川) 가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을 한 익공집으로 단청을 하였다.

크기는 3.7평으로 작은 건물이며, 헌종때 궁궐지에 창건연대를 미상이라 하였다.

숙종의 ‘취한정제영의 시’가 있는 것을 보면 취한정은 숙종(1674-1720) 이전의 건물이다.

소요정과 옥류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태극정[太極亭] - ‘태극이 있은 뒤에야 음양과 오행이 있다는 뜻으로 세상 만물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지은 정자라 합니다.

청의정[淸漪亭]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인데 궁궐 지붕으로 초가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청의정 앞으로는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작은 논이 있는 데 벼가 익어 가고 있더군요^^

농산정 [籠山亭]
정사에 몰두하면 침식을 잃을 정도였다는 정조도 가끔은 후원에 와서 정취를 즐겼다.
특히 농산정을 좋아하여 재숙(齋宿)을 하기도 했으며, 화성 행차 준비를 이곳에서 하기도 하였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으로 행차할 준비를 할 때, 창덕궁 후원에서 혜경궁이 타고

갈 가마를 메는 연습 등을 한 후 농산정에서 신하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昌德宮後苑] & 비원[祕苑] 창덕궁 북쪽에 창경궁과 붙어 있는 한국 최대의 궁중 정원입니다.

처음 창덕궁을 찾았을 때는 예약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번엔 미리 예약을 해 제대로 구경을 해 볼 참입니다. 12시가 되니 입장이 되더군요^^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芙蓉池]를 중심으로 주합루, 영화당, 부용정[芙蓉亭]이 있는 데,

부용지 중심에 둥근 섬을 만들고 소나무를 심었으며 예전에는 부용지에 배를 띄워놓고 놀았다고 합니다.


芙蓉亭은 숙종33년(1707) 본래 택수재로 지은 것을 정조 16년(1792년 건립?)에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이라

부르게 돼었으며,  十자형 평면을 기본으로 하되,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입니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층 전각인 주합루는 정조가 왕이 되면서 만들었으며, 1층은 규장각으로 왕실 도서관이고, 2층은 주합루로 누마루를 갖춘 열람실 내지 정사를 토론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서향각은 서고인데 수리중이라 가려져

있네요~  주합루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큰 문 하나, 작은 문 두개로 이루어진 어수문이 있다.

어수문의 뜻은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말로 왕과 신하의 관계를 비유한다고 합니다.

주합루 일대는 학문과 교육을 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을 일으킨 곳이라 하네요^^

조선의 궁궐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 의해서 조성된 연못입니다.
남쪽 연못 모서리 장대석에 새겨진 뛰어오르는 형상의 물고기가 새겨져 있네요.

부용지 부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영화당[映花堂]

숙종 2년(1692)에 재건한 건물로 왕족의 휴식 공간이자 앞마당에서 과거 최종 시험, 연회, 활쏘기 등

여러가지 행사를 실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며, 이곳에서 많은 행가를 베풀었습니다.

금마문을 지나니 의두합(마루 이름이 기오헌), 오른쪽이 운경거가 보입니다. 할아버지 정조 때의 왕도 정치의 부활을 꿈꾸던 효명세자가 책을 읽던 서재라 합니다. 운경거는 한 칸 반짜리 건물로 창덕궁에서

가장 작은 건물로 마루 밑으로 5개의 구멍이 뚫힌 것이 보입니다. 지금은 단 위로 건물이 개방되어 있지만

예전 모습을 보면 담장과 계단 위에 문이 있었다고합니다.

불로문은 두 개의 주춧돌 위에 한 장의 큰 통돌로 만든 돌문입니다.

불로문을 통과하면 만수무강과 불로장생한다고 한다고 해 절대 만지면 안된다고 당부하네요^^

불로문을 지나면 애련지와 애련정인데, 처음 숙종때에는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합니다. 숙종이 연꽃을 좋아하여 애련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지금은 섬은 없고 애련정은 북쪽 끝에 걸쳐 있습니다. 애련정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정자 뒤로 괴석과 산이 병풍 역할을 하고, 앞에는 연꽃이 피고,

북서쪽 연경당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작은 인공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제 애련지를 뒤로 하고 존덕정[尊德亭]과  반월지[反月池] 부근으로 발걸음음을 옯겨 봅니다.

창덕궁(사적122호)은 1405년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인데,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 방면에 있다 해서 '동궐'이라고도 했습니다.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 유산위원회에서

수원 화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 때 만들어 진 것으로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휴식하던 곳이다. 후원은 북원(北苑),

금원(禁苑)이라고도 불렀으며, 고종 이후에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낮은 야산과 골짜기에 원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꼭 필요한 곳에만 사람의 손을 댄 우리 나라의 으뜸가는 정원입니다.

금천교가 세워지고(1411) 돈화문이 건립되는가 하면(1412) 조선 제9대 성종 때부터는 여러 임금들이

여기서 지내 본궁 역할을 하는 궁궐이 됐다.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을 보니 일본여행시 학생들이 6~8명으로 나누어져 전문 해설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문화재를 관람하는 모습이 너무나 부럽더군요. 우리도 그런 점은 꼭 본받아야 될 것 같더군요~

진정한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이라 함은 이렇게 학생들이 우리문화를 하나씩 알아가는 점이 아닐까요^^

1611년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이 궁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낙선재 등 많은 문화재가 곳 곳에 있어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은 불에 타고 만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이에 화가 난 백성들이 궁궐을 방화했는 데, 1611년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이 궁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낙선재 등 많은 문화재가 곳 곳에 있어 잘 알려진 궁궐이라 합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방문한 창덕궁인데 후원을 보는 거라 마음이 급합니다~

그래도 가는 길이니 잠시 들러 담아 보았죠^^

창덕궁 인정전[昌德宮 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이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고

신하들로부터 조하를 받는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입니다.

요로콤 멋진 궁궐을 보며서 마음은 콩밭에 ㅎㅎㅎ

후원을 보겠다는 일념[一念] 하나로 열심히 갔는 데 정말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라고

사전예약제이고, 시간이 부족해 포기하고 다음 기회로... ㅠㅠ

언젠가 꼭~ 부글부글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으로나마 후원을 감상해 봅니다.

동궐도  국보 제249호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그림   576*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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