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용두산공원이 화폭속에 가득 담겨져 있네요^^

용두산은 조선시대에 초량소산(草梁小山), 송현산(松峴山)으로 일컬어졌고, 1876년 부산항 개항 후에는 

'소산(小山 )' '중산(中山)' 등으로 불렸다. 용두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78년 일본 자료인 조선귀호여록(朝鮮歸好餘錄)에서다. 그후 1899년 산정에 신사를 크게 지어 '용두산신사'라 칭하면서 용두산이란 

이름이 통용됐다.

개항 후 일제는 초량왜관 일대를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바꾸고,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는다. 그리고 1916년 용두산 일대 1만2000여 평을 공원 용지로 책정하고 시설을 늘린다. 그후 용두산은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공원으로 불렸고, 1960년 4·19혁명 이후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됐다.

용두산 변천사를 연구해 온 한국해양대 김승(국제해양문제연구소) 교수는 "용두목, 용머리, 용소 등이 말하듯 용 문화는 원래 한국에 있던 것"이라며 "개항 후 일본인들이 용두산이란 이름을 처음 쓴 것은 맞지만, 단선적으로 대륙침략 풍수로 규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용두산은 이름 자체가 이미 역사가 된 만큼 이런저런 다양한 해석을 허용해 자체 콘텐츠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중구,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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