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궁에서 전통음악을 특별한 무대 없이 낙선재 전각에서 "낙선재 음악회"를 듣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여인 정희왕후 이야기'를 주제로 배우 임성민씨가 전하는 스토리텔링은 정말 좋았습니다.

공연내 단아한 자세로 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실제 연예인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정말 미소가 이쁘더군요 ㅎㅎㅎ

고궁에서 우리 음악듣기

궁중무용  "춘앵전"

아쟁산조 - 독주곡으로 창극이나 춤의 반주에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쟁산조는 그 역사가 40~5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아쟁은 본래 궁중음악에서 저음역을 담당하던

악기였는데, 창극과 민속무용의 반주에 사용하기 위해 본래 아쟁보다 작게 개량해 만든 것이 소아쟁이며,

아쟁 산조는 소아쟁으로 연주된다. 대략 1950년대에 들어 아쟁산조의 기틀이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재 민속예술가로 손꼽히는 한일섭(韓一燮)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출처 : 국립음악원]

판소리 심청가 심청이가 제수로 팔려 배를 타고 인당수로 가는 대목

<범피중류>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대목으로 인식되어 있을 만큼 판소리의

기교적인 음악 어법이 망라되어 있어 심청가의 눈대목으로 꼽히고, 토막소리로 부를 때에

자주 선택되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라 합니다. [출처 : 한국민속문학사전에서]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 아나운서라 알고 있었는 데 연기자이기도 했더군요^^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아름다운 분이라 생각되어 지며, 앞으로 더욱 멋진 연기를 기대 봅니다~

배우 임성민씨 파이팅~~

태평무[太平舞]는 국가의 평안을 위해 추었던 한국 전통 무용인데, 일제 강점기에 한성준이 재구성했다.

대한민국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무속장단에 맞추어 궁중 복식을 갖추고 태평성대를 나타내는 우아하고 화려한 민속춤인데,

의젓하면서 경쾌하고 , 가볍고도 섬세한 발 디딤새가 이 춤의 특징이라 합니다^^

후원을 보기 위해 기다리던 중 시간이 있어 들렀던 낙선재에서

 이런 공연을 본 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였습니다.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에 지어진 건물인데, 본래 이름은 낙선당이었으며, 창경궁에 속해 있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입니다. 2012년 3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고종 황제도 이곳에서 지낸 바 있으며, 1917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났을 때 순종 황제도 내전 대신 낙선재에

머물렀다. 이곳은 황족들이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유명합니다.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여기서 기거하다 숨졌으며, 1963년 고국으로 돌아온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는 각각 1970년과 1989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덕혜옹주 역시 어려운 삶을 보내다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으며, 1989년 사망했습니다.

귀국 후에도 지병으로 많은 고생을 한 덕혜옹주. 그녀가 정신이 맑을 때 썼다는 낙서 한 장은
낙선재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조선황실의 마지막 모습을 잘 대변해 주고 있네요~

"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낙선재는 궁궐 내의 침전건축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주택형식으로 건축되었으나,
궁궐 침전형식이 응용되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양의 장식이 특히 주목되며,
조선 후기 건축 장인(匠人)들의 축적된 기량을 엿볼 수 있어 건축적인 가치가 높다고합니다.
또한 조선왕가의 실제 침전으로 사용된 역사성도 중요한 건물입니다.

“궁궐지”에서는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고 있으나 근래에는 창덕궁에서 들어가도록
되어있는 건물로 창덕궁의 동남쪽에 창경궁과 이웃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승정원 일기”와 낙선재 상량문에 헌종 13년(1847)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된 건물로서
국상을 당한 왕 후와 후궁들이 거처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를 뒷 받침하는 예로 낙선재 바깥 뜰에 사각정이 있다.
4면에 亞자분합문 과 고창을 둔 것으로서 관을 발인할 때까지 두던 빈전이다.
일반의정자와는 그 용도가 크게 다른 건물이라 하겠다. [참조 : 궁궐길라잡이]

조선시대 국왕들 중에는 궁궐에서 태어나 세자나 왕자를 지낸 후 국왕에 즉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는 바깥 사저에서 태어나거나 어린시절을 보낸 후 왕위에 오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국왕들은 어린시절 편안했던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이궁(離宮)으로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궁궐을 지었는데, 창덕궁 연경당과 낙선재, 경복궁 건청궁이 대표적이다.

낙선재는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왼쪽에 돌출한 1칸이 초석 위에 놓여 누마루로 되어 있다.

누마루 뒤로는 온돌방 1칸을 두고, 대청2칸, 온돌방 2칸, 다락방 1칸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간소하게 지어졌지만, 문살과 장식등에서 궁궐 전각의 화려함이 남아 있네요^^

공연을 본다고 정신이 팔려 제대로 둘러 보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또 오면되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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