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마을의 외나무 다리!  콘크리트 다리가 세워지기 전 세상과소통할수 있는 길은 오직 이 다리뿐

이 세상 떠나는 상여도 새색시 태운 가마도 모두 이 다리로 ...

무섬마을을 감싸 안은 물줄기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다.

무섬마을 홈페이지   이미지 참조

삼면은 내성천 줄기에 안겨있고 뒤로는 태백산 끝자락과 이어진다.

무섬 마을의 초가집에서

고택 입구의 대문칸의 초가가 더욱 정겹더군요^^


기와지붕이 독특하죠~

초가 지붕에는 까치구멍이라 불리는 형식입니다^^

   아궁이와 외양간이 실내에 들어와 있는 까치구멍집은 연기와 냄새의 배출을 위한 환기구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지붕 용마루 양 끝단 아래 합각부분을 막지 않고 틔워 놓았다. 이곳으로 간혹 까치가 드나든다고 해서 까치구멍집이다.

   까치구멍집은 밖에서 보면 모두 벽으로 막혀있어 난방과 방어에 유리하다. 정면 가운데 있는 판문을 들어서면 봉당이고 좌우로 부엌과 외양간이 함께 있는 게 보통이다. 농경이 중심이던 시기에 소는 가족구성원으로 집안에 들어왔다. 바닥이 낮은 부엌과 외양간은 상부공간에 여유가 있어 고미다락을 만들어 추수한 곡식이나 생활용품의 보관소로 활용했다. 봉당 뒤로는 마루가 있고 좌우로 방이 있다. (인터넷 참조)

영주 무섬마을은 2013년 8월 23일에 국가지정문화재 주요민속문화재 27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흙벽의 환기구멍도 나무벽도 모두 정겹네요^^


육지속 섬마을!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41 (수도리 209) 

무섬마을 홈페이지 이미지 참조

다리하나를 건너니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해우당, 만죽재 등의

고택들과 초가들이 오랜 세월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육지속 섬마을! 무섬마을
'물위에 떠 있는 섬'이란 의미이기도 하지만
무섬의 다른 의미로는 3무(三無)이다. 마을안에 우물이 없고, 대문이 없고, 농토가 없다는 뜻기도 하다네요^^

시인 조지훈은 시 `별리(別離)’에서 자신의 처가 동네인 무섬을 가리켜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라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무섬마을은 340여 년이라는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반남 박 씨와 선성 김 씨 두집안의 집성촌으로

수백년 동안 화목하게 지낸 우리 전통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였습니다.

[ 마을의 유래와 전설 ]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입니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뒤편에서 만나 350도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또한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선성김씨 해우당고택 (宣城金氏 海愚堂古宅)

경북지역 양반집 대저택 한국의 한옥으로 고택 영주 선비촌에서 가장 큰 저택 중의 하나인 "해우당"

경북 안동지역 저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ㅁ'자형 저택이다.

고종(高宗) 때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김낙풍(金樂豊, 1825~1900) ,     건축시기 : 1879년경

높은 천장

넓은 대청 마루가 인상적입니다^^   6칸의 대청 본체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의 평면구성은 전면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두었다.

이런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정말 훌륭한 분들의 고향 같았습니다^^

'만죽재(晩竹齋)' 고택은 무섬마을의 입향시조인 박수(朴隨)가 1666년도에 최초로 건립한 가옥으로

북부지역의 口자형 평면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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